6월은 호국보훈의 달
조선 독립을 위해 붉디붉은 심장을
조국에 바친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려
그들의 영혼이 잠든 효창공원을 찾았다.
'임정요인의 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으로 활약한
임정 주석 이동년, 군무부장 조성환
비서장 차리석선생을 모신 곳
담벼락에는 효창공원의 발자취가...
원효대사 동상이 왜 여기에?
1968년 세종로에 이순신 장군 동상
사직공원에 율곡 이이 선생 동상
효창공원에 원효대사 동상 건립!
담 넘어 길 건너에는 숙명대학교가~
적절한 경사와 운동시설이 있어
운동하고 걷기에 최적이다.
역사가 서려있는 샘터의 유래
조선 제22대 정조의 큰 아들로 5세에
세상을 떠난 문효세자의 무덤인
효창원이 있던 자리로 가뭄에도 안 말라
공동우물로 사용하던 곳
원래 효창원이었으나 1944년 전쟁
희생자를 위한 충혼탑 설립을 명목으로
조선 왕실 무덤을 고양 서삼릉으로
이전하며 효창공원으로 변경
애국열사들의 '무궁화동산'
조국 광복을 위해 몸 바친 삼의사 묘역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거룩한 종말을 기리는 비석은 엄숙하다.
맨 좌측에는 안타깝게도
언제 모셔올 수 있을지 모를
안중근 의사 유골이 없는 가묘가 있다.
'광복 70주년 기념광장'
광복 70주년을 맞아 10개의
태극기를 포함한 태극조형물을 설치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염원
'의열사'는 효창공원 내 묘역이 있는
독립운동가 7인의 영정을 모신 사당
이동영, 김구, 조성환, 이봉창, 차리석,
윤봉길, 백정기 등 7인
백범 김구 묘소는 작업 중이고
지난번에 가보았기에 자연스레 패스
'백범 김구'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꿈꾸었던
나라의 큰 선생으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했던 김구
김구 선생의 연도별 발자취
김구를 살린 전화
당시 사형집행이 정지되었던 상황을
경성에서 인천에 설치된 전화로
'고종이사형을 중단시켰다'라고 설명
서대문 감옥에서의 수감생활
독립정부가 조직되면 정부의 뜰을 쓸고
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되기로 결심하여
호를 '백범'으로 정하였다.
계단을 올라 2층 전시관으로~
1919년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을 시작으로 내무총장,
국무령, 주석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었다.
1931년 '한국애국단'을 창설 민족독립과
조국광복을 위한 의열투쟁을 전개함
중국을 다 돌아본듯한 이동경로
2층 유리창을 통해 본 김구선생 묘역
'충칭(중경) 임시정부 청사'
임시정부는 오랜 피난생활로 인해
흐트러진 정부의 조직과 체계를
정비, 강화하였고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좌익진영과 통일을 이루었다.
1933년 '장제스'와의 면담
낙양군관학교에서 한인 청년들의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미주 교포들의 지원에 힘입어
1940년 9월 임시정부의 국군인
'한국광복군 창설'
1949년 6월 26일 김구선생은
안두희의 흉탄에 의해
그토록 바라던 통일 대한민국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독립과 통일된 문화국가
대한민국을 위해 첫걸음을 내디뎠던
평범하지만 비범한 사람 백범 김구
국난극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의 조국 사랑에 대한 애국심에
경의를 표하며 공원을 나선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