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세 밤만 자고 나면 2021년은 사라지고
검은 호랑이의 해 '壬寅年'이 밝아오리니
호랑이의 기운으로 악귀를 쫒아내 주기를~
지하철 동묘역 8번 출구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백남준 기념관'은
창신동을 갈 때마다 첫 방문지이지만
매번 코로나로 문이 굳게 닫혀 있었는데
이번에는 고맙게도(?)...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
이곳에서 태어나 13년간 살았던 그의 집터
벽 한쪽에는 작가의 작품 설명은 물론
생가 공간을 재건축한 역사까지 빼곡하다.
내부에는 TV는 물론 라디오 카메라 지구본
어머니가 쓰시던 재봉틀 등
작가의 유년시절을 엿볼 수 있는 물품들~
맨 위의 그림은
백남준 생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부유했던 옛 모습을 기억해냈다.
백남준은 서구 예술판에 뛰어들어 인정받은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
그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다.
첨단기술 매체와
인간이 어떻게 공존해야 할지 상상하고
이를 예술로 표현했다는 점!
백남준의 책상에 앉아 책장을 넘겨보며
미디어 아트를 체험해도 좋을 듯^^
창신동 회오리 길을 가는데 보다시피
선별 검사소에 줄을 선 모습이 장난 아니다.
이 고통스러운 광경은 언제쯤 끝이 날지~
독립운동을 했다고 알려진 부모가
해방 후 창신동에 살았다는 '배호 집 터'
창신동 봉제공장 골목에 자리하고 있어
무심코 그냥 지나쳤던 '안양암'
서울시 사찰 가운데
120년 전 창건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전각, 불상, 불화 등
2,700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서울시 유형 문화재 제122호 '관음보살좌상'
바위 절벽에 관음전이라는
폭이 좁은 전실 건물 속에서 얕은 부조로
감 실을 마련한 후 좌상을 새겼는데
암벽을 깎아 만들었다는 자체가 대단하다.
대웅전 옆으로 오르니 계단이 있고
그 오르막 중간의 '석감마애아미타여래좌상'
안양암 석굴은 두 개가 있는데 서로 통해있고
밑에는 물이 흐르고 있어 조심해야 한다.
석굴에서 바라본 창신동과 안양암 전경
지금 '동안거 기간'이라서 스님들은 안 보이고
묵묵히 사찰을 지키고 있는 감^^
김광석이 살던 곳은 찾기가 대단히(?) 힘들다.
동네 사람도 모르고 안내 표지도 없고
단지 아버님 문패만 있을 뿐~
그의 앨범 수록곡 몇 개 소개를
서른 즈음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 먼지가 되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등등
동네 골목에는 주로 봉제공장 일을 하다 보니
물건을 나르는 오토바이가 즐비하다.
이곳이 나름 이름도 재미있는 '회오리 길'
보다시피 경사가 만만치 않아
잠시 쉬었다가 뒷짐 지고 다시 오르는 길인데
그래도 자전거를 조금 탔다고
어떻게 올라가면 좋을까 기분 좋은 상상을~
바람이 어찌나 거세게 부는지 자칫
산타 할아버지가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동네 꼬마들 소원으로 만든 '산마루 놀이터'
이 건물 자체는 대통령 상을 받았는데
야외에서는 모래놀이를 하고
안쪽에서도 즐거운 시간 갖기에 충분^^
건너편 낙산공원과 이화동 벽화마을 건물
무엇이든 예술이고 누구든지 예술가가 되는
멋진 공간 '창신 소통 공작소'
누구나 예술을 배워 재능을 나누고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가도록 돕고
스스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예술 공간!
예전에 안보이던 작품들이 담벼락에 있어
오르막을 오른 뒤 쉬면서 감상을~
언제나(?) 닫혀있었던 '채석장 전망대'
나중에 알고 보니 평일에는 1시에 오픈이다.
다음에 꼭 오후에 올라 가보리라^^
하늘도 맑으니 북한산을 배경으로 찰칵!
'비우당'은 비를 가리는 집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실학자
지봉 이수광(유관의 외손자)이 살던 곳
조선 초기의 청백리 '유관'이 이곳에 살며
지붕이 새자 우산을 받치고 부인에게
'우산 없는 집은 어떻게 견딜꼬?'라 했다는~
비우당 뒤뜰에 작은 우물과
자주색 풀의 계곡에 있는 샘이란 뜻의
'자주동샘'
원래 바위에 새겨진 이름은 자지동천인데
그 이름이 거시기(?)하여 바뀌었다나?
이 샘에서 정순왕후가 지초를 풀어 옷감을
자주색으로 물들이는 염색과
빨래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한다.
정업원 터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비구니 절
'청룡사'의 우화루는
단종이 영월로 유배 가기 전
정순왕후와 마지막 하루를 보낸 곳
왕비에서 노비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60년 비운의 단종비 송 씨 '정순왕후'
15세에 왕비에 책봉되었으나 3년 뒤
단종이 왕위에서 쫓겨나 정업원에서 지내며
생계를 위한 염색일 등을 하면서
힘든 삶을 이어가다 82세 나이로 승하했다.
동망봉에서 바라본 창신동 채석장
가파른 절벽의 위아래로 주택들이 들어선
달동네 일명 '돌산마을'
일제 강점기에 돌산에서 화강암을 캐내
서울역, 조선 총독부 등을 건축했고
탁 트인 전망이지만 자세히 보면 상처 투성이
정순왕후 송 씨가 청룡사에 기거하면서
동쪽의 단종이 있는
영월을 바라보며 평안을 빌었다는 '동망각'
동묘를 둘러보고 바로 옆에 있는
종로구 숭인동과 중구 황학동 사이
청계천의 '영도교'
정순왕후가 단종을 영월로 보낼 때
마지막 이별을 한 곳으로
영영 이별한 곳이라 '영이별 다리'로 불렀다.
이번 뚜벅이는 생가 및 집터 세 군데와
창신동의 봉제 골목은 물론
채석장과 낙산공원을 둘러보고
정순왕후의 삶을 들여다보았던 역사 기행(?)
매번 갈 때마다 한 가지씩 더 배우고 느끼는
그 오묘함에 힘들어도
다시 발걸음을 하게 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