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
'삼도수군 통제영'은 통영 중앙 전통시장
동피랑과 가까워 통영 일정 중
언제든지 찾아가기 쉬운 지리적 이점이 있다.
삼도수군 통제영'은 정유재란 이후 한산도에서
이곳 통영으로 옮겨졌으며 290여 년간
왜적에 대비하는 조선수군의 총본부로서
오늘날의 해군 작전사령부와 같지만
군령은 물론 군정권도 함께 있었으니 어쩌면
해군본부라고도 말할 수 있다.
1998년 사적으로 지정되어
복원계획을 수립하고 백화당, 병고, 중영청,
산성청, 12 공방 등의 건물을 복원했다.
중영청의 외삼문인 '삼도대 중군아문'은
통제사의 참모장인 우후의 군영
'망일루'는 세병문이라고도 하며
통행금지와 해제를 알리는 커다란 종이 있어
종루라고도 하였고
문 바로 아래 총통이 예포를 쏘듯 좌우에 있다.
통영성을 지키는 산성 중군의 관아 '산성청'
'좌청'은 사병이 비상 대기하던 건물로
대 변좌청이라고도 하며
1689년에 좌청과 우청으로 분청 하였다.
2층 누각인 '수항루'는 통영성 남문 밖에 있고
임진왜란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하여
봄가을 군점 때에 모의 왜병으로부터
항복받는 행사를 거행해 왔다.
'지과문'은 세병관의 입구로 무척 가파르다.
통제사의 치적을 기록한 '두룡포기사비'는
비석의 받침대 없이
비신과 머릿돌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이 비를 세우게 된 경위와 함께
약력과 업적 등이 기록되어 있다.
숙종 27년 제77대 류성추 통제사 때
세병관 뜰에 액막이로 만든 '석인'은
세병관 앞 장대석 석축 과정에서 발굴되었고
지금도 오방색 깃발을 들고 당당하게 서있다.
'세병관'은 국보 제305호로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현재 남아있는 조선시대 건축물 가운데
면적이 가장 넓은 건물 중 하나이며
현판 역시 엄청나게 크다^^
세병관은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로웠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있는데
여름에는 저 큰 기둥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피로를 말끔히 씻어줄 듯~
세병관 옆에 있는 느티나무는 둘레는 5m이며
통제영 창건 당시 심어져
수령은 400년 이상으로 추정하는데
어쩌면 지나온 이야기를 들려줄듯한데...
통영을 중심으로 주변의
거제, 고성, 사천, 남해에 이르는 지역을
회화식으로 그린 '삼도수군 통제영 고지도'는
산천, 바다, 도서 등의
자연적인 지형이 산수화풍으로 그려졌으며
방위의 혼란이 이 지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제부터 고시원 같은 쪽방 크기의
숙소와 공방을 둘러보는데
때를 잘 맞추어 오면 무형문화재 장인들의
일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는데...
12 공방은 각각 역할이 있었는데
'야방장'은 쇠를 녹여 화살촉, 칼 등 병기 및
각종 주물을 주조하던 곳
나무로 가구 및 문방구 등을 만들던 '소목방'
자개를 붙여 나전 제품을 만들던 '패부방'
'화원방'은 각종 지도 및 군사적 목적의
의장용 장식화를 그렸던 곳
말총을 엮어 망건, 탕건, 유건 등을 만들던 '총방'
'공내헌'은 공방을 관리하던 공감의 집무실
물을 저장하여 자개 등을 갈고닦는 등의
작업을 하던 '석수조'
주변에 흩어져 있는 12 공방은
말 그대로 금속을 가공하고 가죽을 다듬고
그림을 그리고 옻칠을 하는 등
각각의 역할이 12개의 공방으로
생활용품이나 예술품 등을 만들어 내는
장소라 생각하면 될듯하다.
아까 지나온 건물에서 가족들이
전통 윷놀이를 하고 있는데
투호도 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다.
'공록당'은 공고에 딸린 집무 공간
중국 사신 등의 손님들을 맞이하는 '백화당'은
통제사의 접견실이자 비장청
'통제사 비군'은 역대 통제사들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이 시내 일원에 흩어져 있던 것을
현 위치에 모아 세운 일종의 송덕비 58기
'내아군'은 통제사가 업무를 보던 영역으로
안쪽으로 운주당과
이순신 장군의 관사인 경무당이
오른쪽엔 살림 차인 내아가 있다.
통제영 병무를 과장하던 곳으로
현재 대포, 창, 검 무기류를 전시하는 '병고'
'운주당'은 군막 속에서 전략을 세운다는 것으로
통제사가 통제영 업무를 보는 집무실
직접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혼자라서 그냥 패스~
'경무당'은 이충무공의 뜻을
크게 우러러본다는 의미의 작은 집무실
'죽고자 싸우면 살 것이요
살고자 싸우면 죽을 것이다'
통제사가 거쳐했던 '내아'는 지방관청의
안채에 해당하며 안방, 대청,
건넛방, 부엌, 찬방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한옥은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추운 겨울에는
바닥 난방을 하는 온돌로 따뜻하게 하였고
여름에는 나무 바닥으로 된
개방형 대청마루를 두어 시원하게 하였다.
휴식을 얻는 곳이란 뜻의 '득한당'
산기슭을 올라서니 만날 수 있는 정자
육의 정과 의두헌
운주당 뒤뜰 후원군은
휴식을 하면서 자연을 조망하거나
연회나 시회를 하는 장소로 활용되었는데
주변의 대나무와 소나무가 멋지다.
이 일대가 대나무 숲이었다는 정자 '황간발'
언덕에서 바라보니 왼편 남망산 조각공원과
바다와 건물들이 훤히 보이는데
예전에는 모두 초가집이었겠지?ㅋㅋ
오솔길 중간에 삼도수군 통제영을
한눈에 조망 가능한 곳이 있어 발길을 멈추니
세병관 지붕 넘어 공원도 보이고~
세병관 기둥 사이 동피랑과 동포루도 보인다.
내려가는 기에 보니 돌담길은 물론
멋스럽게 뻗은 처마와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기와지붕 모두 예쁘다.
사람들로 가득 찬 동피랑과 비교하면
관람객은 별로 없지만
역사 공부도 하고 푸릇푸릇한 나무 사이를
걸으며 평온한 마음을 추슬렀던 이곳!
시간을 태엽 감듯 감아 펼쳐 보이는
풍광이 아늑한 삼도수군 통제영
언제 찾아도 넉넉하고 평온할 듯하다.
여행을 하면서 관광지를 다녀도 좋겠지만
때로는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는것도 좋은 선택이 아닐까?
'A people without the knowledge
of their past history,
origin and culture is
like a tree without roots'
'자신들의 역사와 유래, 문화를 모르는 민족은
뿌리가 없는 나무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