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생가 주위의 다산길은
다산 선생의 생가와 묘소를 중심으로 기념관,
실학 박물관,다산 생태 공원등
조선 후기 최고의 실학자이자 개혁가
정약용을 테마로 거리를 잘 조성하였다.
먼저 다산 생태공원의 아름다운 풍경부터~
저 멀리가 퇴촌과 분원리 방향이고
강변 건물이 팔당호수 수질 관리센터이다.
5월이지만 햇살이 따가워서인지
나무 그늘 밑과 등나무 아래에 사람들이 쉬고있다.
인증샷을 줄을 서서 하던 곳이지만
사람들이 없으니 주인공은 나무와 호수!
연두빛 새순이 올라와 주변이 싱그럽고
자연스레 기분도 상쾌해지니
그래서 집을 나서나보다^^
생태공원을 돌다보면 정약용의 삶과 책자들을
미리 볼 수 있어 예습(?)이 가능하다^^
그네와 팔각정에는 어김없이(?)사람들이 앉았고~
여유로운 발걸음에 많은 아름다운 풍경이 보여
저 멋진 데크 전망대에 올라 한번쯤...
이제 서서히 문화관으로 발길을 돌려 보는데
기념관은 정약용 선생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조명
이 많은 책들을 저술하다니 그저 놀라울뿐이다.
기념관 내부는 아담하지만 좀 어두운듯 했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유학은
주자학과 양명학으로 나뉘어 지는데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양명학은
조산 중기 실학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에 들어왔다.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한 거중기를 설계하여
정조가 수원화성을 축조하는데 막대한 기여를 했다.
기념관은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의 업적과 자취를~
1801년 천주교를 탄압한 신유 박해때
강진으로 유배되어 18년간 유배생활중에
학문에 몰두하여 500여권의 책을 저술하였고
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 등이 대표작이다.
조선시대 후기의 최고의 실학자이자 천재(?)인
'다산 정약용' 비록 천주교 신자 집안이라는
약점이 있었으나 정조의 사랑은 대단했고
정조가 일찍 승하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조선의 역사가 많이 달라질수도...
정문에서 왼쪽으로는 서당, 중앙 언덕위 묘소,
오른쪽의 생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밖에서 바라본 사랑채 '여유당'의 모습
글씨는 추사의 글씨를 집자해서 새긴것이라 한다.
대문을 지나 나지막한 돌담장의 마당에 들어서니
단아한 모양의 'ㄱ'자 안채가 보이고
사랑과 사랑채가 길게 자리하고 있다.
비록 재건해서 원래의 모습을 갖고 있지 않지만
위압적이고 으리으리한 기와집이 아닌
소박하고 단아한 저택이다.
지금은 보기 힘든 장독대 모습에서 정겨움이 솔~솔
고종은 다산의 사후에 문도공이란 시호를 내렸고
그래서 그의 사당을 '문도사'로 불리며
안에는다산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있다.
계단을 오르면 앞으로 탁트인 전망의 묘소가 있다.
풍수지리는 잘 몰라도 앞으로 팔당호가 펼처졌고
뒤로는 산이 있으니 이곳이 명당 아닐까?
또한 그 아래에는 배산임수 자리에
그의 생가인 .여유당'이 들어 앉아 있다.
실학 박물관은 안타깝게도 코로나로 휴관중ㅠㅠ
(다음 기회에 꼭 가보시기를 추천)
바로 앞 홍이포는 16C 네덜란드 선교사에 의해
명나라에 전해진 서양 대포이며
17C에 조선에 전해졌다.
바닥에는 역사 교과서에서 꽤나 많이 들어본
저서들의 이름을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어 놓았다.
비록 짧은 다산길 이었지만
많은 느낌과 공감을 갖게한 행복한 뚜벅이였다..